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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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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용서, 참된 공동체의 길

마태복음 18장은 제자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겸손과 섬김, 실족과 용서, 권징과 화해에 대한 교훈이 가득 담긴 장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시며, 그 핵심은 겸손과 사랑, 그리고 용서에 있음을 반복해서 가르치십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장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자들이 어떻게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린아이 같은 겸손, 하나님 나라의 시작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묻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8:1). 이 질문은 세속적인 위계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아직도 세상의 질서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에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예수님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나 천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가진 전적인 의존성과 자기를 높이지 않는 자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겸손으로 시작되며, 자신을 낮추는 자가 오히려 가장 큰 자입니다. 이는 구속사의 질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사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셨듯이(빌 2:5-11), 하나님 나라의 백성 역시 자기를 낮추는 자리에서 그분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18:5)고 하시며, 작고 연약한 자들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섬기라고 하십니다. 반면, 이런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정도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하십니다(18:6).

이는 공동체 안에서의 태도를 단순한 도덕적 윤리 수준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교회는 약자를 배려하고, 겸손히 섬기는 자들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크고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고 의존하는 자에게 향해 있습니다.

죄에 대한 단호함과 잃은 자를 찾으시는 마음

예수님은 이어서 죄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18:8). 이는 문자적으로 신체를 절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죄를 다루는 태도에 있어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생명을 잃게 하며,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지옥 불에 던져질 위험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18:10) 하시며,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00마리 중 99마리를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마음은,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구제나 사랑의 행동이 아니라, 구속사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놓지 않으시는 언약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8:14). 하나님의 공동체는 효율이나 다수의 논리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단 한 영혼도 귀하게 여기며, 끝까지 찾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오늘 교회는 이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잃은 자를 찾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상처 입은 자나, 실수로 인해 멀어진 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참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권면과 용서, 교회를 세우는 복음의 능력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대할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18:15). 이는 사적인 원한이나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사랑의 권면입니다. 그리고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려가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른바 '권징'이라 불리는 이 교훈은 교회의 질서 유지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회복을 위한 마지막 수단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18)고 하시며, 공동체의 권위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제도나 권한이 아니라, 복음에 근거한 화해와 회복의 권위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합의된 결정에 대해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 이 말씀은 단순히 예배의 정당성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결정하고 행할 때 주님께서 그 중심에 함께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는 언제나 주님의 이름 안에서만 행사되어야 하며,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권력 행사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질문합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답하시며,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18:21-35).

이 비유는 용서의 본질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는데, 그것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 6천만 일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사실상 갚을 수 없는 금액입니다. 임금은 그를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줍니다. 그런데 그 용서받은 자는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약 100일 품삯)을 빚진 자를 만나,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분노하며 말합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를 형벌에 넘깁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말씀은 조건 없는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를 깨닫는 사람은 결코 형제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복음의 원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사람은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18장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질서를 다룹니다. 제자 공동체는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하며, 그 중심에는 겸손과 사랑, 그리고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겸손으로 서로를 높이고, 잃은 자를 끝까지 찾으며, 죄를 엄중히 여기되 회복과 용서의 길을 항상 열어놓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길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자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모인 자들이며, 그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받은 용서를 기억하며, 오늘도 서로를 품고 용서하며 세워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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