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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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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고난 사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길

마태복음 17장은 변화산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속 사역의 정체를 드러내고, 이어서 제자들이 겪는 실패와 예수님의 인내를 보여줍니다. 산 위의 영광과 산 아래의 고난이 맞닿아 있는 이 장은,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자된 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메시아의 신성과 인성, 영광과 고난이 함께 선포되며, 그 속에서 성도들은 참된 제자도의 길로 초청받습니다.

변화산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영광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어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17:2). 그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율법과 선지자가 모두 예수님을 중심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 장면은 구약 전체가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는 구속사적 진리를 밝히는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감격 속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조싸오니”라며 초막 셋을 짓자고 제안합니다(17:4). 이는 인간적인 반응이며, 영광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17:5). 이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들린 음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선언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아들로 공인하는 동시에, 율법과 선지자보다 뛰어난 분임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 음성을 듣고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와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이 복음의 위로입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은 사랑으로 덮이고, 다시 일어서는 힘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을 뒤로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변화산의 영광은 일시적 체험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완성될 영원한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잠시나마 목격했지만,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믿음 없는 세대와 제자들의 실패, 그리고 주님의 권능

산 아래에서는 한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 예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아버지는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청합니다(17:15).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며 탄식하시고, 그 아이를 꾸짖어 깨끗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그리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17:20).

여기서 '작은 믿음'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왜곡된 신앙을 말합니다. 믿음은 어떤 기술이나 공식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전적인 신뢰입니다. 제자들은 이전에 능력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마 10:1), 그것이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영적 기술처럼 여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언제나 새롭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17:21)고도 말씀하십니다. 이는 어떤 특별한 의식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전적 의탁 속에서만 주어지는 능력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반복되는 루틴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는 생명력 있는 믿음입니다. 산 아래의 제자들은 영광의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경험이 곧바로 믿음의 깊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참된 믿음은 일상의 현실 속에서, 고난과 연약함 앞에서 드러납니다.

고난의 예고와 자발적 순종, 그리고 섬김의 자유

예수님은 다시금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십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7:22-23). 이는 16장에서 처음으로 고난을 말씀하신 이후 반복되는 고난 예고이며, 예수님은 점차 제자들에게 그 길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심히 근심”합니다. 메시아가 고난을 당한다는 개념은 유대인의 메시아 사상과 충돌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세속적 영광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성전세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버나움에 도착하자 반세겔을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너희 선생은 성전세를 내지 아니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왕들이 세금과 공과를 누구에게서 받느냐? 자기 아들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타인에게서니이다”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그렇다면 아들들은 면제니라”고 하십니다(17:25-26).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물고기의 입에서 나오는 한 세겔로 본인과 베드로의 세금을 내도록 하십니다(17:27). 이 장면은 자발적 순종과 자유 속의 섬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주님은 자유로우시지만,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이는 곧 십자가의 정신이며,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자유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성전보다 크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런 세속적 의무도 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세속적인 관습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자기를 낮추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정신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17장은 변화산에서의 영광과 산 아래 현실의 고난이 함께 맞물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제자의 삶을 구속사적으로 조명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시며, 동시에 고난의 종이십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영광을 보되, 그 영광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받습니다. 믿음은 표적을 보는 것으로 자라지 않으며, 현실 속에서 주님을 붙드는 신뢰로 자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낮아지시고, 섬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영광과 고난의 사이에서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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