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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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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전통과 하나님의 계명, 참된 정결함의 길

마태복음 15장은 인간의 전통과 하나님의 계명의 충돌, 그리고 참된 정결이 무엇인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형적 경건과 대비되어, 예수님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신앙과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이 장은 또한 유대 경계 밖에 있는 이방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병자들의 고침과 많은 무리의 배불림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을 넘어 열방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통과 율법, 정결과 불결, 믿음과 불신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통해 복음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전통을 넘어 계명으로: 입술이 아닌 마음의 신앙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묻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다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나이다”(15:2). 이들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고 확장해 만든 구전 전통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키지 않는다는 종교적 비판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응수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15:8).

 

예수님은 중심이 없는 외식된 경건을 정면으로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우선시했고, 심지어는 그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가르치면서도, 고르반(하나님께 드렸다고 선언함으로써 부모를 돕지 않는 관습)을 통해 실상은 계명을 무력화시킨 것이 그 예입니다(15:4-6).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참된 더러움이 무엇인지 설명하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1). 당시 유대인의 정결법은 철저히 외적인 기준에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음식이나 손 씻지 않음이 아니라, 악한 생각, 살인, 간음, 탐욕, 거짓 증언 등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15:18-20).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의 정결 규례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상징이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율법의 그림자가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참된 정결은 의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마음을 낮추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인 신앙이 아닌 내면의 순결과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이방 여인의 믿음: 구원은 경계를 넘어

이어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역, 곧 이방인의 땅으로 가십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이 꺼리는 지역으로, 정결과 부정을 철저히 가르던 바리새인의 시각으로는 상종할 수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가나안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15:22).

 

이 여인의 고백은 단순한 요청이 아닙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메시아를 향한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조차 그녀를 보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험하듯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이 말은 여인의 신앙을 드러내기 위한 주님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엎드려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15:27).

 

이 겸손하고도 간절한 믿음 앞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는 마태복음에서 가장 강하게 칭찬받은 신앙 고백 중 하나입니다. 유대 경계를 넘어선 여인의 믿음은, 오히려 선택받은 유대인들의 불신보다 더 큰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이 장면은 구속사가 단지 민족적 범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자격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겸손히 부스러기라도 좋다고 나아오는 이방 여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주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서고 있는가? 자신이 주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가, 아니면 단지 은혜를 구할 뿐이라고 고백하는가?

 

병자들의 치유와 칠천 명의 배불림: 은혜는 넉넉하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가에 가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다리를 저는 자, 맹인, 말 못하는 자, 기타 많은 병든 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고침을 받습니다. 이 모든 병자들이 나음을 입자 무리가 놀랍게 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5:30-31). 이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유대 땅을 넘어서 병든 이들을 향한 긍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십니다.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내가 그들을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15:32). 제자들은 이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의심합니다. “이 광야에서 어디서 이런 무리를 배부르게 할 떡이 우리에게 있사오리이까?” 그러나 예수님은 또다시 7병과 몇 마리의 작은 생선을 축사하시고 떼어주십니다. 칠천 명이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나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의 반복이 아닙니다. 오병이어가 유대인 중심의 사역 속에서 이루어진 기적이었다면, 이 사건은 이방 지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의 복음이 민족을 초월하여 확장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숫자 7은 완전함을 상징하며, 7병과 7광주리는 그 은혜의 넉넉함과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병든 자를 치유하시며, 굶주린 자를 먹이시며, 외면당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교회는 이런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실제로 굶주린 자를 돌보고,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15장은 전통과 계명의 충돌, 마음의 정결함, 믿음의 본질, 그리고 복음의 확장을 한 흐름 안에서 강하게 드러냅니다. 외형적인 정결함을 주장하는 종교적 신앙은 주님 앞에 진실로 설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회개하는 마음, 겸손한 자세,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이방 여인의 고백과 칠천 명의 배불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하며, 믿는 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오늘도 마음을 다해 믿고 나아오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 부르심 앞에 진실함으로 응답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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