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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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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외형을 넘어 십자가의 긍휼로

마태복음 12장은 안식일 논쟁과 귀신 추방 사건,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세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율법의 형식을 붙든 자들과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신 예수님의 충돌은 구속사의 핵심인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안식일 논쟁과 예수님의 주권

예수님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제자들을 옹호하시며, 다윗과 제사장의 사례를 들어 율법의 본질은 긍휼임을 말씀하십니다(12:1-8). 예수님은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심으로, 율법을 넘어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십니다. 이어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선을 행하는 것이 안식일에 합당함을 보여주십니다.

이 논쟁은 고난주간에 예수님이 받은 비난과 죽음의 이유를 미리 보여줍니다. 형식과 전통에 갇힌 종교 지도자들은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의 행위를 불법이라 여기며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 곧 쉼과 회복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이루실 분이십니다. 참된 안식은 율법의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안에 있는 은혜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사람들의 죽이려는 계획을 아시고 자리를 옮기시며, 많은 병자를 고치십니다(12:15). 마태는 이 장면을 이사야의 예언으로 연결시켜, 예수님이 "내가 기뻐하는 나의 종"으로 이방에게 공의를 전하실 분이라 증언합니다(12:18-21).

이 종의 모습은 고난주간 예수님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는 다투지 아니하고, 외치지 아니하며, 꺾인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침묵하신 예수님, 채찍과 조롱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으신 주님의 모습은 참된 하나님의 종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힘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공의를 이루셨고, 그의 죽음은 가장 낮은 자에게 소망을 주는 구속의 완성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과 성령 모독의 경고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자를 고치신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합니다(12:24). 예수님은 스스로 분열된 나라가 설 수 없음을 설명하시며,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대화는 성령 모독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이어집니다. 성령의 사역을 귀신의 역사로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12:31-32). 고난주간에 예수님은 무고하게 고소당하고, 거짓 증언에 의해 십자가에 넘겨지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선포되던 복음은 배척당했고, 그 결과 유대 지도자들은 구속의 길을 스스로 막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역사 앞에 분별 없이 반응하지 말고, 겸손히 구속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무와 열매, 마음의 말로 드러나는 진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악한 말을 책망하시며, 나무와 열매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12:33). 이어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며, 말로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하십니다(12:36-37).

이 교훈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악한 말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침묵과 진실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정죄하던 자들은 거짓과 독으로 가득한 말을 쏟아냈고, 그 말이 그들 자신을 심판하게 되었습니다. 구속사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으로 판단받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줍니다. 참된 구속의 열매는 회개와 순종, 그리고 진실된 말과 행위로 드러납니다.

요나의 표적과 더 큰 이의 임재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12:40).

이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구속 사건을 가리키는 핵심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생명을 이루시는 구속의 표적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표적을 보지 못했고,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이 심판 때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고난주간을 맞는 우리는 십자가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속의 궁극적 표적임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깨끗이 한 후 다시 더럽혀진 마음에 대한 경고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돌아와 그 사람을 더 악하게 만든다는 예수님의 비유는, 회개 없는 겉모양의 정결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12:43-45).

예수님 당시 많은 이들이 병고침과 기적을 경험했지만,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변화되지 않았기에 다시 악함에 빠졌습니다. 이는 구속의 은혜를 겉으로만 받는 것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변화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함을 뜻합니다. 고난주간의 예수님은 외형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셨고, 우리 또한 회개와 믿음의 열매로 구속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가족,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왔을 때,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고 말씀하십니다(12:50).

이 말씀은 혈연보다 더 깊은 영적 관계가 구속사 안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십자가 사건은 가족의 개념을 넘어서, 믿음으로 하나 된 새로운 공동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구속의 열매는 단순히 개인의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이루게 합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12장은 외형적 율법주의와 진정한 구속의 긍휼이 충돌하는 장면을 통해, 십자가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악함과 거짓, 무관심과 형식을 넘어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랑으로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며 우리는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점검하고, 예수님의 긍휼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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