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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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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죄인의 자리에 선 하나님의 아들

마태복음 27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과 고난,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유다의 후회와 자살, 빌라도의 재판, 바리새인들의 시기, 백성의 외침, 군병들의 조롱, 십자가에서의 외침, 그리고 무덤에 묻히심까지 모든 장면은 인류의 죄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심판을 견디시며, 죄인들의 자리에 서서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셨습니다.

무죄하신 예수님, 죄인의 자리를 대신하다

이른 아침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빌라도에게 끌고 갑니다. 유다는 자기가 무죄한 자를 팔았음을 후회하고 은 삼십을 성소에 던지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고, 이것은 예언된 말씀의 성취였습니다(스가랴 11:13).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목을 물었으나, 예수님은 대부분 침묵하십니다. 총독이 놀랄 정도로 그 어떤 항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53장에서 예언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과 일치하며, 예수님은 무죄하시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침묵의 고난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고 싶었지만, 백성의 여론과 종교 지도자들의 압력에 굴복합니다. 그는 무리 앞에서 물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하지만, 백성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칩니다(27:25). 이 말은 무서운 자기 저주이며, 결국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민족적 고난으로 이어집니다.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당하고 십자가형에 넘겨집니다.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 서시고, 실제 죄인인 바라바는 풀려나는 이 장면은 구속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해 죽으시고, 죄인은 대신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조롱당하신 왕, 십자가에서 보이신 참된 권세

군인들은 예수님을 총독 관정으로 데려가 온 군대를 모읍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며, 오른손에 갈대를 쥐어 조롱합니다.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치며 조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장난감 왕으로 취급하며, 철저히 인간적인 왕권의 왜곡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롱 가운데 진짜 왕이신 예수님의 신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신 왕이시며, 십자가는 그분의 즉위식이며, 그 위에 세워진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패는 조롱이 아니라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는 왕이십니다. 그의 권세는 폭력과 군대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 안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양편 강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지나가던 자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다른 사람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고 비아냥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것이 그분이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증명합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속사의 중심이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은혜, 십자가에서 만나다

오후 세 시경,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십니다(27:46). 이는 시편 22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며,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으신 사건입니다. 이는 단지 감정적 고통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분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침 이후,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집니다(27:51).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음을 상징합니다. 더 이상 제사장이 필요 없고, 속죄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며, 그의 피가 완전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의 몸이 살아나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온 우주적 변화와 구속사의 전환점을 가져오는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역사의 정점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던 백부장은 이 모든 일을 목격하고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의 이방 백부장이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는 최초의 공식 고백자가 됩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온 세계로 확장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장사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하신 구속자

저녁이 되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 하여 깨끗한 세마포에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모십니다. 이는 이사야 53장 9절의 성취입니다. “그는 죽은 자들 중 하나로 묻혔으며 그 무덤은 부자의 것이라.” 예수님은 전 생애를 가난하게 사셨으나, 그의 무덤은 부자의 무덤이었습니다. 이는 죽으심마저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덤 앞에는 큰 돌을 굴려 막고, 여인들은 그 무덤 맞은편에 앉아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십자가 현장부터 무덤까지 그 자리를 지킨 자들로, 부활의 첫 증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한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우려하여 무덤을 봉인하고 군사로 지키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과 시도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장사는 실패나 절망의 결론이 아니라, 곧 일어날 부활의 서곡입니다. 하나님은 죽음 속에서도 일하시며,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27장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의 자리에 서신 구속사의 절정입니다. 무죄하신 예수님은 침묵으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과 조롱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며, 실패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이며, 공의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다시 살아나실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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