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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 중요한 주제와 묵상

게으른책벌레 202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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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경배, 이방의 빛으로 오신 예수

마태복음 2장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하러 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한 아기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이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만의 구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세주,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의 빛이 되신 분임을 드러냅니다. 이사야 60장에서 예언된 바와 같이, 열방이 주의 빛을 보고 달려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이 장면에서 성취됩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을 때(2:2), 이는 단순한 아기 찾기가 아닌 신적인 왕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이는 구약의 별과 관련된 메시아 예언(민수기 24:17)을 반영합니다. 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상징이며, 그 빛은 어두운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는 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고난주간에 이 말씀을 대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이 유대인만이 아닌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한 민족의 회복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이방의 소망이 되는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민의 구주이심을 상징적으로 선포한 사건입니다.

헤롯의 분노와 유아 살해, 십자가 고난의 예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하고 떠난 후, 헤롯 왕은 유대의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는 끔찍한 명령을 내립니다(2:16). 이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오실 때, 세상 권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 유아 학살 사건은 예레미야 31:15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라는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함께, 메시아 도래의 슬픔이 동반됨을 예시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남부터 죽음의 위협 속에서 시작되었고, 고난은 그의 생애 내내 함께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고난주간에 우리가 대면하는 예수님의 고통과 연결됩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무고하게 죽임당하는 자들 가운데 자신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유아 학살은 죄 없는 자의 피흘림이라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피흘림을 예고합니다. 그분은 악한 세력 앞에 저항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애굽으로 피신하신 예수, 구속사의 반복

요셉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합니다(2:13-15). 이 사건은 호세아 11:1의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는 예언의 성취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경험했던 역사를 반복하는 듯 보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겹쳐지는 지점은, 그분이 참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실패했던 구속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의 시작이었다면, 애굽으로 도망하신 예수님의 사건은 새로운 출애굽의 서막이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참된 해방자이시며, 바로와 같은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애굽에서 부름을 받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며,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고난주간에 이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몸소 살아내셨음을 봅니다. 그분은 고난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애굽이라는 상징적 장소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구속사의 반복은 실패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구원으로 전환시키시는지를 보여주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예수, 천한 곳에서 시작된 영광

헤롯이 죽은 후, 요셉은 다시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유대 왕으로 있음에 두려워하며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게 됩니다(2:22-23). 이 사건은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리라 하셨다”는 말씀의 성취라고 마태는 기록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리라’는 말씀이 구약 성경에 문자 그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입니다. 특히 이사야 11:1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라는 말씀에서 ‘싹’(네체르)이라는 히브리어 단어와 연결됩니다. 나사렛이라는 이름 자체가 ‘싹’과 어원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 이새의 후손으로 오신 분임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라셨다는 사실은 그의 비천한 출신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예언된 것처럼,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음”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나사렛이라는 이름 자체가 당시 사람들에게 무시의 대상이었기에(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세상적으로 아무런 권세도 가지지 않은 자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나사렛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삶은 고난주간을 통해 십자가로 이어지며, 천한 자가 가장 높이 들리는 구속의 역전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예수님은 천한 자리에 임하심으로, 높임을 받으셨고, 그 길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셨습니다.

전체 결론

마태복음 2장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관련된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치밀하고도 정교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 유아 학살, 애굽 피신, 나사렛 거주 등의 사건 하나하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며 예수님께서 구속의 중심에 서 계심을 증언합니다. 고난주간에 이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는 위대한 사건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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